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채영이 / 2001-03-08 / 오후 10:01:06 / 203.255.3.190
조회수 : 31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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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[사랑] [퍼온글] 사랑.. 사랑.. 그 서글픈 두글자 |
오늘 제 옆자리 의자 위의 초라한 천 방석을
아무 생각 없이 물끄러미 보다가..
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.
그 자리의 주인은 다정하고 친절한 남자입니다.
하지만 명색만 주인일 뿐
그 의자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.
메인 컴퓨터 자리거든요.
그 남자는 가끔 와서 잠시 쉴 뿐이죠.
그에게는 6년을 사귄 여자가 있었습니다.
양가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당연히 결혼까지 생각한 사이였는데...
몇 달전에 헤어졌지요.
남자가 일방적으로 헤어지자고 말했답니다.
여자가 너무 피곤하게 군다는 게 이유였습니다.
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면 한시간마다 전화를 해서 빨리 들어가라고 독촉을 하고,
일 때문에 피곤한 그에게 자주 못 만난다며 짜증을 냈답니다.
흔한 일이잖아요.. 오래 사귄 커플들...
여자는 갈수록 집착하고, 남자는 갈수록 사랑이 식고....
여잔 울면서 매달렸지만 그는 냉정했습니다.
여자는 원망했답니다.
꽃다운 청춘을 당신과 다 보냈는데
서른 가까이 되어서 이제 헤어지자면 어떻하느냐고...
그는 말했답니다. '미안하다'
몇 일간을 울면서 애원한 후 그가 바뀌지 않을 걸 알게 되었고,
일주일 후 그녀가 회사로 소포를 보냈더군요..
이제까지 함께 찍은 사진을 갈기갈기 찢어 상자에 넣어서요...
남자는 말하더군요.
그냥 자기가 알아서 버리면 될 걸, 무섭다구요.
하지만 전 알고 있었습니다.
그것이 6년의 시간에 대한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였다는걸요.
하지만 전 아무말 하지 않았고 별 생각도 없었습니다.
남의 일이였으니까요.
아무나 엉덩이를 깔고 앉는 저 지저분한 방석은
그녀가 그에게 만들어 준 것이였습니다.
지금은 빨지 않아서 더럽고 다른 방석과 아무렇게나 겹쳐져 있지만
전 여자로서 그녀의 정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.
저 천에 그려져 있는 예쁜 토끼도... 하늘색 바탕도..
그를 생각하며 골랐겠지요.
오늘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앉아서
그 방석을 보며
분명히 그녀가 저 구겨진 방석을 본다면
서러이 울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.
사랑하는 남자를 생각하며
저 천을 고르며 솜을 누비며
바느질했을 그녀의 시간들이..
같은 여자로서 너무 생생해서
오늘 얼굴도 모르는 그녀를 대신해 제가 눈물을 흘립니다.
그에겐 함께한 6년이 저 초라한 방석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거라면
그녀가 저걸 보면 얼마나 가슴 아플까요.
이아니 자존심 상하고 한이 맺힐까요?
6년 동안 매 주말마다 만나고 매일 전화한 사람을
어느 날부터 다시는 볼 수없는데 그게 왜 그에겐 아프지 않을까요?
만약 저 방석을 보고 조금이라도 아파했다면 치웠버렸거나
최소한 사람들에게 아무렇게나
취급되게 그냥 방치해 두진 않았을 겁니다.
하지만 그는 그 방석을 구겨 앉아서
새 여자친구를 위해 반지를 주문하고
새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해서
'밥은 먹었냐, 잠은 푹 자야지' 걱정을 하며 사랑을 속삭입니다.
뭐가 그렇게 걱정될까요?
헤어진 그녀에게도 그렇게 6년을 속삭여놓고 다시는 안봐도 괜찮으면서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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